한씨와 선우씨가 같은 뿌리에서 갈라졌다는 오래된 전승과 기록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다만 이것을 현대 역사학에서 완전히 입증된 혈연관계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1. 청주 한씨·태원 선우씨·행주 기씨의 ‘삼형제 전승’
『청주한씨세보』와 『태원선우씨족보』 등에 따르면, 기자의 후손인 준왕이 위만에게 쫓겨 남쪽으로 내려가 마한의 한왕이 되었고, 그 후손인 마한 원왕에게 세 아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전승에 따른 계통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자 → 준왕 → 마한 원왕
├─ 우평(友平) → 태원·북원 선우씨
├─ 우량(友諒) → 상당·청주 한씨
└─ 우성(友誠) → 덕양·행주 기씨
따라서 전통 족보에서는 한씨·선우씨·기씨를 성은 다르지만 같은 조상에서 갈라진 ‘이성동본(異姓同本)’으로 설명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도 이 계통 전승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다만 다른 계통설에서는 친(親)이 한씨, 평(平)이 기씨, 양(諒)이 선우씨가 되었다고 하는 등 인명과 분파 순서가 서로 다릅니다. 이러한 차이는 고대부터 이어지는 정확한 계보라기보다는 후대에 정리된 족보 전승일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2. 조선왕조실록에도 관계가 언급됩니다
1603년 8월 13일 『선조실록』에는 선조와 신하들이 기자의 후손 문제를 논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시 윤근수는 다음과 같이 보고했습니다.
“세상에서 전하기로는 청주 한씨가 기자의 후손이라 합니다.”
이어서 공씨·인씨·선우씨 역시 기자의 후손으로 전해진다고 말했고, 평안도의 선우씨가 대대로 평양 기자전의 참봉을 맡았다는 이야기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적어도 조선 중기에는 청주 한씨와 선우씨를 기자 계통의 친족 성씨로 보는 인식이 실제로 존재했습니다.
청주 한씨의 족보인 『청주한씨세보』도 1617년 청주 보살사에서 목판으로 간행되었으며, 책 앞부분에 청주 한씨의 전대 사적과 시조 관련 기록을 수록했습니다.
3. 그러나 역사적으로 확정된(?) 혈연관계는 아닙니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습니다.
확실한 것
- 조선시대에 한씨와 선우씨를 같은 기자 후손으로 보는 전승이 있었다.
- 조선왕조실록과 양쪽 족보에 관련 기록이 있다.
- 선우씨가 평양 기자전의 제향과 관계를 맺었다는 기록이 있다.
확인되지 않은 것
- 기자에서 마한 원왕, 세 아들, 한씨·선우씨로 이어지는 계보가 실제 고대부터 끊김 없이 이어졌나
- 오늘날의 청주 한씨와 태원 선우씨가 생물학적으로 동일한 조상을 가진 친족인가.
2019년 발표된 「청주한씨 ‘기자후예설’ 재검토」에서는 고려시대까지 청주 한씨의 기원과 관련해 기자가 등장하지 않으며, 기자 후손설은 주로 조선 중기 이후 형성·확산되었다고 분석합니다. 가문의 오래됨과 유교적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 기자와 연결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입니다.
반대로 기자조선과 기자 후손 전승을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기록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학설도 있습니다. 이 견해에서는 한씨·선우씨·기씨가 각각 신라·고구려·백제 지역으로 분화한 같은 계통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학계에서도 해석이 완전히 하나로 통일된 문제는 아닙니다.
한국사학계에서는 기자가 중국에서 왔다고 하여, 한국사의 일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좁은 인식을 가지고는 있으나, 고조선시대의 한민족의 개념은 중국의 북부와 만주부터 바이칼호수에 이르는 광대한 강역을 통치하고 있었기에 중국이 주장하는 은나라와 상나라도 광의의 개념으로서 한민족의 일부일 수가 있는 것이다. 특히 근래 발굴되고 있는 홍산문화를 보면 더욱 그 역사적인 사실로 접근하고 있다고 하겠다.
결론
정확하게 표현하면,
청주 한씨와 태원·북원 선우씨는 족보상 기자와 마한 왕실의 후손으로서 같은 조상에서 갈라진 집안이라는 오랜 전승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고대부터 이어진 실제 혈연관계로 확정할 만한 연속적인 사료는 부족하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친족이라는 인식과 족보 전승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기에, ‘과학적·사료적으로 완전히 입증된 혈연관계’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하나, 오래동안 전승으로 내려왔다는 사실은 실제적으로 그 3성씨의 혈연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Comments
Post a Comment